[청라온=이원탁 기자] 필자가 <언더피프틴>의 논란을 다룬 제작진의 해명 기사를 본 지도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2025년 3월 31일 MBN에서 첫 방영 예정인 <언더피프틴>은 시작하기도 전에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과거에 유행했던 흔하디 흔한 K-POP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만 15세 이하의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특이점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언더피프틴>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전보다 비판의 강도가 더 컸다. 여아들이 착용한 시스루나 크롭티 복장, 그리고 진한 화장 등이 해당 논란에서 큰 지분을 차지했다. 결국 제작진들은 빗발치는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5일에 논란을 해명했다. 프로그램을 둘러싼 오해가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 의도는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함일 뿐 허튼 의도는 없다는 논지였다.
논란의 여지가 큰 컨셉의 방송을 계획해 놓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제작진의 순진무구한 아이디어가 왜곡당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 아팠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필자의 머리에는 문득 이러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정말 이들만의 문제인가?’ 인간의 행동 원리는 대부분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어난다. 분명 절대적으로 수호해야 할 가치와 윤리가 존재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걸 미처 헤아리지 못하게 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 시장과 사회의 옹호와 격려가 그들이 <언더피프틴>을 계획하도록 부추긴 게 아닐까?
사실 이전에도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종종 등장했다. 2017년에 방영한 <아이돌 학교>에서는 만 12세의 김은결이 최연소 참가자였으며, 2021년에 처음으로 방송한 <방과후 설렘> 최연소 참가자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이 중 <아이돌 학교>는 너무나 높은 강도와 열악한 환경으로 이미 따가운 눈초리를 받은 바 있다.
과연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수요 없이 저절로 계획되고, 발표되었을까? 서서히 낮아지는 아이돌 데뷔 연령은 이러한 세태에 불을 붙였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여성 걸그룹인 뉴진스, 베이비몬스터, tripleS의 일부 멤버들은 미성년자일 때 데뷔했다. 현 뉴진스의 최연소 멤버인 혜인은 만 14세에 데뷔한 바 있다. 처음부터 끼를 가진 채로 아이돌이 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돌은 연습생 단계를 거쳐 아이돌로서 무대를 밟는다. 데뷔 연령이 낮아질수록 얼마나 더 어린 아이들이 연습생이 되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가혹한 체계 속에서 희망 고문을 당할지 가늠도 할 수 없다.
시장의 공급이 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명제에 가깝지만, 제일 큰 요인을 차지한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아이돌은 타 음악계 직업 중에서도 특히 대중과의 소통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아이돌이 팬에게 밝고 기운찬 모습만 보여주듯, 팬 또한 아이돌에게 소위 말하는 덕질을 하면서 감정과 비용을 소비한다. 팬들은 자신들이 애정을 쏟는 만큼 아이돌이 정신적으로, 또는 다른 방면으로 성장하는 모습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중에는 유년기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 이른바 성장서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릴수록 성장서사는 더 또렷하게 보인다. 성장하는 폭이 크고, 미성숙했던 이전과 대비되는 면이 큰 까닭이다.
타인이 성장하는 이야기는 분명 아름답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보며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극복하지 못했던 악당을 주인공이 성장하여 무찌르는, 영웅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몇십여 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만큼 성장서사는 매력적인 마케팅 요소이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아름다운 성장서사를 바라는 소비자와 니즈를 충족하려는 시장의 움직임은, 어린 참가자들에게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독이 든 성배를 쥐여 준다.
칼럼을 읽고 누군가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꿈나무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겠다는데, 이게 왜 나쁜 건가?’ 그러나 이는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판단력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주장이며, 그들에게 적용되는 연습생 시스템의 가혹한 체계를 간과하는 의견이다. 이는 지나친 이상주의, 혹은 가면을 쓴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결국 하나의 그릇된 방향으로 귀결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으며, 나쁜 결과 중 일부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다. 바로 그러한 의견이 모여 지금의 논쟁을 야기하지 않았는가.
프로그램 제작진만의 과실이라면 당장 방송국으로 달려가야 마땅하다. 그저 규탄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사태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부조리를 시정해야 한다. 그리 해야 비로소 정리가 가능하다. 기회의 장을 준답시고 아이들을 무대가 아니라 상품 진열대에 전시한 제작진들도 문제지만, 결국 그 선택의 배경에는 이익에 경도된 부도덕한 경제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아이돌의 저연령화, 그리고 연습생 과정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시장의 생존 방안이자, 변화의 단계라면 그저 깎아내리기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데뷔 최소 연령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어린 연습생들의 학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그리고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 지금의 시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원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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