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31일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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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크기가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

송근우, 조성만기자 · 2026.08.01 00:10 · 2026.08.01 00:15 수정 · 조회 6회

[청라온=송근우 기자, 새벽의 은빛=조성만 의장] 2022년 1월 진명여고 위문편지 사건이 논란이 된 데 이어, 약 4년 뒤인 2026년 6월에는 배재고 야구부 응원 구호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는 두 사건을 통해 일부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이 정치적·사회적 갈등 속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 과정에서 공적 책임을 맡은 기관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표면적으로 두 사건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일부 학생이 군 장병에게 보낸 부적절한 위문편지에서 시작됐고, 다른 하나는 고교야구 경기 중 상대 학교를 향해 외친 부적절한 구호에서 비롯됐다. 사건을 다룬 기관도, 적용할 수 있는 규정도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두 사건은 비슷한 질문을 남겼다. 일부 개인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가. 그 책임이 학교나 학생 집단 전체로 확장돼도 되는가. 그리고 여론이 들끓을 때 공적 기관은 사실관계와 절차, 처분의 비례성을 얼마나 일관되게 지킬 수 있는가.

진명여고 사건에서 공개된 일부 편지에는 군 생활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표현이 담겨 있었다. 학교 행사에 불만이 있었다고 해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장병에게 모욕적인 표현을 전달한 행동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다만 위문편지 작성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는지는 당시에도 논쟁적이었다. 당시 데일리안의 서울시교육청 취재 보도에 따르면, 위문편지 작성자는 전체 1·2학년의 절반 미만이었고 모든 학생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전교생에게 일률적으로 작성을 강요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편지를 작성한 학생에게 봉사활동 1시간이 인정된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이 설명을 통해 모든 학생이 강제로 참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참여한 학생들이 아무런 압박 없이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형식적으로 선택권이 있었는지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고 느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교육청은 현장 장학지도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조희연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편지로 상처받은 장병과 위문편지 작성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 학생들에게 모두 사과했다. 온라인 공격을 받은 학생들을 위한 상담·치료와 불법 합성사진 삭제 지원도 약속했다. 이후 정부가 공개한 국민청원 답변에서는 학교 교육 활동이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시 당국이 침묵한 채 학생들을 무조건 감쌌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학생들을 집단적인 사이버 폭력으로부터 보호한 조치는 필요했고 정당했다. 다만 교육청의 초기 설명이 ‘모든 학생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실상 ‘강제성이 없었다’는 결론처럼 제시한 것은 비판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국이 분명하게 구분했어야 할 책임은 세 가지였다. 부적절한 편지를 작성한 일부 학생의 책임, 봉사활동과 위문편지를 연계하고 이를 지도한 학교의 책임, 그리고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의 신상을 유포하고 성희롱과 협박을 가한 사람들의 책임이다. 미성년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첫 번째 책임을 지워서도 안 되지만, 일부 학생의 잘못을 이유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임을 뒤섞거나 학교 전체에 낙인을 찍어서도 안 된다.

한겨레가 전한 국방부 설명에 따르면, 위문편지는 국방부 차원의 공식 사업이 아니며 학교와의 교류 여부는 각 부대가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이는 사업의 운영 주체를 설명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논란에 관한 모든 책임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각 부대와 학교 사이의 위문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운영할 것인지, 부적절한 편지가 전달됐을 때 장병과 미성년 학생을 각각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군 당국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배재고 야구부 사건에서는 징계권을 가진 기관이 신속하고 강하게 움직였다. 2026년 6월 29일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벌어진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광주 지역 학교를 상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발표와 한국일보의 규정 검토 보도에 따르면,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7월 1일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규정상 팀의 경기방해 행위에 대해 6개월 이하의 출전 정지를 내리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과거 다른 학교 야구부가 경기방해 행위로 6개월 출전 정지를 받은 전례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보도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조롱성 응원을 구체적으로 상정한 조항이나 징계 선례는 없었다. 협회는 기존 규정의 ‘경기 방해’를 근거로 삼았지만, 매일신문이 공개한 팀 징계 기준의 해당 항목은 ‘심판불복 경기방해’로 적혀 있었다. 따라서 이를 ‘아무런 규정도 없는 징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심판 판정 불복과 무관한 조롱성 응원에 해당 항목을 확장해 적용한 해석이 적절했는지는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국민일보가 주진우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협회 회의록에 따르면, 협회는 해당 응원을 경기장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기방해로 판단했다. 또 팀에 즉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이유로 ‘사안의 사회적 파장과 증거 자료’를 들었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사회적 파장이 징계 판단의 보조적인 요소였는지, 아니면 불명확한 규정과 부족한 사실 확인을 대신한 기준이었는지다. 여론의 분노가 크다는 이유로 최고 수준의 처분부터 내린 것이라면, 공정한 절차를 지켜야 할 기관이 오히려 여론재판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이후의 경과도 함께 봐야 한다. YTN이 전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재심 결과에 따르면, 위원회는 7월 20일 문제의 구호가 규정상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피해 학교로부터 용서와 선처 요청을 받은 점, 학생들이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고 대학 진학 등 장래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6개월 처분이 과중하다고 판단했다. 최종 징계는 1개월 출전 정지로 감경됐다.

재심 절차가 작동해 과도한 처분이 조정된 점은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최초 심의에서 왜 최고 수준인 6개월 처분이 필요했는지, 개별 학생들의 가담 정도와 인식 차이가 충분히 조사됐는지, ‘사회적 파장’이 징계 수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전히 검토할 문제다. 잘못이 분명하다는 사실과 최초 징계가 과중했다는 판단은 얼마든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문제의 구호가 학생들 사이에서 아무런 배경 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앞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이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다. MBC충북 보도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관련 사과문을 올린 뒤 국민의힘 충북도당 공식 계정에는 “스타벅스에 들렀다 출근해야지”라는 글이 게시돼 5·18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고 배재고 선수들 모두가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구호를 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학생 경위서 내용에 따르면, 다수 학생은 해당 표현과 5·18의 연관성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학생은 비하의 맥락을 인지하고 구호를 제지했다고 진술했다. 학생들의 인식과 가담 정도는 서로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정치권, 온라인 여론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확산된 표현이 충분한 맥락 설명 없이 청소년 문화와 스포츠 현장에까지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성인 사회에서 먼저 확산된 갈등의 언어를 경기장에서 반복했고, 가장 직접적인 제재와 불이익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별개로, 그러한 표현을 만들고 키운 어른들의 책임과 이를 걸러내지 못한 교육의 공백도 함께 물어야 한다.

두 사건의 대응을 기계적으로 비교해 같은 기관이 노골적인 이중잣대를 적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울시교육청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서로 다른 기관이며, 행사 지도와 스포츠 징계라는 권한의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두 사건을 함께 살펴볼 의미는 분명하다. 공적 책임을 맡은 기관은 여론의 크기와 방향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책임의 범위를 행위자별로 구분하며 절차에 따라 비례적인 조치를 내려야 한다. 학생 보호라는 원칙도, 피해자 존중이라는 원칙도, 잘못에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사안에 따라 편의적으로 소환돼서는 안 된다.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과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희생은 역사적 성격과 맥락이 서로 다르며 기계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희생만 존중받고 다른 한쪽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희생을 각자의 맥락에서 존중하는 태도와, 잘못된 표현에 대해 일관된 원칙으로 책임을 묻는 태도는 양립할 수 있다.

원칙이 사라지고 사실 확인과 절차적 정당성보다 정무적 판단이 앞서는 순간, 공적 기관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훼손한다. 한 사건에서는 형식적 자율성만을 앞세워 일부 학생들이 제기한 실질적 압박의 문제를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다른 사건에서는 사회적 파장을 이유로 최고 수준의 징계를 서둘러 내렸다는 의심을 받았다면, 기관은 그 의심을 해소할 만큼 투명한 기준과 판단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갈라치기와 혐오, 마녀사냥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그 뿌리는 개인의 잘못을 집단 전체의 죄로 확장하고, 사실과 절차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분노의 대상을 고르는 선택적 분노다. 공적 기관이 여기에 편승하거나 눈치를 본다면 그 분노는 더욱 거세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다. 그리고 그 일관성을 지켜야 할 첫 번째 책임은 여론이 아니라 공적 기관에 있다.

잘못한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책임을 묻되, 그 이상의 책임을 학교나 집단 전체에까지 떠넘기지 않는 사회.

미성년자 보호라는 원칙을 사안마다 편의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를 존중하면서도 여론에 떠밀린 과잉 처벌을 경계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과 절차, 비례성의 원칙을 지키는 공적 기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사회에서만 우리는 특정 학교나 집단 전체에 낙인을 찍는 대신, 개별 행위에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송근우 기자, 조성만 새벽의 은빛 의장

*이 칼럼은 청라온과 새벽의 은빛이 MOU 체결의 일환으로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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