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연구진은 튀르키예의 한 고등학교에서 약 1,000명의 학생이 속한 학급을 일반적인 ChatGPT와 유사한 GPT-4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조건, 교사의 지도를 반영해 힌트를 제공하도록 설계한 AI를 사용하는 조건, AI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나눠 수학 학습 결과를 비교했다.
- 2이후 AI 없이 치른 시험에서 일반적인 GPT-4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공부한 집단의 성적은 AI를 사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약 17% 낮았다.
- 3반면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그 답의 근거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한다.
[청라온=정승원 기자]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신탁을 구하던 고대 델포이를 떠올려보자. 답은 주어졌지만, 그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었다. 오늘날 그 신탁소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화면 속 인공지능(AI)은 빠르고 유창하게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답을 얻었다고 해서 판단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월 발간한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분명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명확한 교육적 목적 아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고 과정 자체를 AI에 맡기면 과제의 완성도는 높아져도 실제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잘 만들어진 결과물과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해 수준은 같은 것이 아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 등이 202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는 이런 차이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튀르키예의 한 고등학교에서 약 1,000명의 학생이 속한 학급을 일반적인 ChatGPT와 유사한 GPT-4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조건, 교사의 지도를 반영해 힌트를 제공하도록 설계한 AI를 사용하는 조건, AI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나눠 수학 학습 결과를 비교했다. 이후 AI 없이 치른 시험에서 일반적인 GPT-4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공부한 집단의 성적은 AI를 사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약 17% 낮았다.
반면 힌트 중심의 AI를 사용한 집단은 AI 미사용 집단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성적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한 학교에서 진행된 수학 실험의 결과만으로 인간의 사고력 전체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기술이라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학습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답을 받은 뒤 무엇을 하느냐다. AI에 생각을 의탁하면 답을 얻는 순간 판단까지 끝내기 쉽다. 반면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그 답의 근거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한다. 같은 화면에서 같은 답을 받아도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 차이를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학생은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그 지식이 맞는지 판단하는 기준도 익혀야 한다. 완성된 답을 옮겨 적는 것으로 과제가 끝난다면 스스로 질문하고, 틀린 이유를 찾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과정은 쉽게 사라진다. 그럴듯한 답을 마주했을 때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다.
수업과 평가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학생이 먼저 자신의 풀이를 제시하도록 하고, AI의 답에서 근거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보게 할 수도 있다. AI의 도움 없이 자신의 말로 다시 설명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했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이해했고, 그 답을 어떤 방식으로 검증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공격하면 큰 제국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전쟁에 나섰다가 자신의 왕국을 잃었다. 그는 무너질 제국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 되묻지 않았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지만, 권위 있는 답을 얻은 뒤에도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필요한 교육은 답을 빨리 얻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답을 받은 뒤에도 생각이 이어지도록 하는 교육이다. AI가 제시한 근거를 따져보고,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뛴 채 결과만 평가한다면, 학생들은 어느 순간 가장 편리해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고까지 외주화하게 될지 모른다.
/정승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