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라온=송민지 기자] 경기도 안양시에서 한국수어의 날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는 2월 27일 오후 2시 안양시 장애인 복합문화관 1층 도담홀에서 진행됐으며, 많은 농인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이번 기념식은 행사 전반이 수어 중심으로 진행된 점이 특징이었다. 진행자는 수어로 행사를 진행했으며, 필요한 부분에는 음성 통역이 제공돼 농인과 청인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행사에서는 청인들이 수어를 활용해 준비한 공연도 진행됐다. 노래 ‘흰수염고래’를 수어로 표현한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두 손을 흔드는 수어 박수로 화답했다. 객석 곳곳에서 반짝이는 손짓의 박수가 이어지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진 강연에서는 소보사(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정가은 학생이 ‘농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수어언어법 10년의 변화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연 역시 수어로 진행됐으며,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음성 통역이 함께 제공됐다.
정가은 학생은 수어가 농인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언어임을 강조하며, 현실에서는 올바른 한국수어 대신 수지한국어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학생들 사이에서도 수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농인 문화와 정체성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농인들이 자유롭게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공동체의 부족도 문제로 제기됐다. 농인이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수어로 소통할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공간이 많지 않아 일상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어 강연에 나선 소보사 선생님은 한국수어언어법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법은 수어의 지위를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실제로 농인의 언어권을 보장하는 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어를 인정하는 것과 언어권을 보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법이 있다면 수어 환경을 제공하고, 수어 교육과 통역 서비스가 실제로 가능하도록 제도와 예산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수어언어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10년 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우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10년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병원이나 장례식장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도 수어 통역을 즉시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더 나아가 학교나 학원 등 일상적인 교육 환경에서도 수어 통역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선언이나 기념행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연에서는 농인 사회 내부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달됐다. 농인 스스로 수어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며, 동시에 정부와 사회 역시 실질적인 정책과 제도 개선을 통해 수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국수어의 날 10주년을 맞은 이번 기념식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수어의 의미와 농인의 언어권 보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됐다.
특히 ‘언어를 인정하는 것과 언어권을 보장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강연 내용은 인상 깊게 남았다. 한국수어언어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농인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과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송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