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온=정혜은 기자] 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전환하자는 논의가 지속되며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응급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어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매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여성의 결정권과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찬성 측은 응급피임약 접근성 확대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신체와 인생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이를 결정할 권리는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의료 접근성이 제한적인 청소년, 저소득층, 장애 여성들에게는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반면 반대 측은 약의 ‘편의성’보다 ‘안전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로게스테론 성분이 고농도로 포함된 응급피임약은 자궁 외 임신, 생식기능 저하, 혈전 생성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반복 복용 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피임연구회가 서울 시내 30개 산부인과에서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은 여성 중 약 36.7%는 반복 복용의 위험성을 전혀 알지 못했고, 30%는 잘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3%는 반복 복용 시 피임 효과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국외 사례를 보면, 응급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된 이후 낙태율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노르웨이는 1995년 전문약으로 응급피임약을 도입한 뒤, 2000년에 일반약으로 전환했지만 판매량은 30배 이상 증가한 반면 낙태율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미국, 일본, 스웨덴 등의 경우에도 유사한 결과가 보고되었으며, 일부 국가는 오히려 성병 감염률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피임약 복용을 요구하면서 여성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거나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으며, 결국 피임의 책임이 여성의 신체에만 전가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는 현재 전문가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약물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혜은 기자